3D 툴이 무료라고?! 오픈소스 3D 툴 Blender의 역사

Roseline Song
10 min readMay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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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더는 Udemy 강의를 듣다가 알게 된 보물같은 3D 모델링 툴이다. 기능도 많고 유튜브로 튜토리얼을 제공하며 Nuke나 마야같은 유료 3D 모델링 툴 못지않게 멋진 3D 그래픽을 만들 수 있다. 제작자의 자비로움에 무한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떻게 무료로 배포됐을까 궁금했다. 그 배경은 블렌더 document에서 찾을 수 있었다.

Ton Roosendaal의 인터뷰와 공식 문서를 토대로 재밌게 재구성해보았으니 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역사에 대해 즐겁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NeoGeo

Ton Roosendaal | source: twitter

1988년, 29살의 Ton Roosendaal은 네덜란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NeoGeo를 설립했다.

또한, NeoGeo는 다국적 전자 기업인 필립스같은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위해 European Corporate Video Awards 수상작(1993년, 1995년)을 만들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또한, NeoGeo는 다국적 전자 기업인 필립스같은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위해 European Corporate Video Awards 수상작(1993년, 1995년)을 만들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Blender의 시초

NeoGeo에서 Ton은 아트 디렉팅과 내부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했다. Ton은 NeoGeo 내부에서 사용하던 3D 툴의 유지보수가 힘들어서 심사숙고 끝에 3D 툴을 개선하기로 결정한다.

1995년부터 리팩토링이 시작되었고, 95~96년도 즈음에 그 툴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3D 모델링 툴 Blender의 시초가 되었다. NeoGeo가 Blender를 개선해감에 따라 Ton은 Blender가 외부 아티스트들에게도 충분히 먹힐만한 툴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I want to do something nobody’s doing 😂”

98년도에 그는 NeoGeo를 팔았다. 딱히 돈이 필요해서 판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인터넷’이 떠오르면서 비디오 그래픽, visualization 시장이 하락세를 보였고 사람들은 게임이나 인터넷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하지 않는 걸 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3D 그래픽 툴’을 만드는 일 같은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1년 만에 Blender를 개발하고 Blender를 팔기 위해 Not a Number(NaN)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NaN이라니. 정말 개발자스러운 회사 이름이다. 처음에는 그저 실리콘 그래픽만을 구현할 수 있는 툴로서 시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사장님이 미쳤어요!

NaN의 핵심 목표는 크로스 플랫폼 3D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대부분의 상업용 3D 어플리케이션이 꽤 비쌌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이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NaN이 이러한 결정을 한 이유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전문적인 수준의 3D 모델링 기술 및 애니메이션 도구를 제공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NaN은 대체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NaN의 비즈니스 모델은 Blender에 대한 상업용 제품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무료로 배포하되 특정 키를 잠금하고, 사용하고 싶으면 $50, $100 씩 내는 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요즘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그렇듯 무료로 배포하고 유료로 전환을 유도하는 사업 모델이었다.

Blender의 성공

Blender 프로젝트 이미지
Blender 프로젝트 이미지

NaN은 Blender를 홍보하기 위해 1999년 개최된 *SIGGRAPH(시그라프, 세계 최대 컴퓨터그래픽 학회)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운이 좋게도 Blender는 처음 참여한 행사에서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3D 모델링 툴이 무료로 배포된다는 소식은 수많은 학회 참여자들과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Blender는 ‘히트’를 쳤다.

SIGGRAPH 컨퍼런스를 통한 성공 이후, 2000년 초반에 NaN은 벤처 투자기업으로부터 450만 유로(21년 5월 14일, 현재 환율로 61억 원)의 투자를 유치시키는데 성공한다. 회사 내부에 큰 현금이 생기자 Ton은 회사를 빠르게 키울 수 있었다. 런칭 몇 달만에 NaN은 5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고 2000년 여름에는 Blender 2.0이 릴리즈되었다. 2.0버전의 Blender는 게임 엔진 기능까지 통합된 3D 어플리케이션이었다. IT 인프라가 막 성장하기 시작했던 2000년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NaN 웹사이트 가입 유저는 25만 명을 넘으며 Blender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1년 미국, 유럽의 IT 버블 붕괴

조금 뜬금없게 경제 이야기를 하게 됐지만 다음에 나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상황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좌) 2000년 초반에 극에 다다른 나스닥 지수 (우) NaN이 투자받았던 2000년 초반부터 2001년 사이는 미국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피크를 찍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 source: wiki

2000년 즈음 IT 인프라가 성장하고 인터넷 산업이 주목 받으면서 전세계에서는 IT 열풍이 불었다. 우리나라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식 기반 경제를 추진하며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정보통신 산업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닷컴 버블은 이렇게 세계 이곳저곳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세계 경제가 인터넷에 주목하면서 IT 관련 벤처기업의 주식이 엄청나게 뛰었다. 문제는 IT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불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 부실 기업의 주가마저 천정부지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닷컴 버블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엄한 곳에 주식을 투자했던 기업,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입었고 각국 정부에서 기준 금리를 낮추며 경기는 계속해서 침체되었다.

무너진 NaN

SIGGRAPH에 출전할 당시만 해도 NaN 역시 Ton과 직원 2명이 전부인 작은 스타트업일 뿐이었다. 그런데 웬 투자자들이 와서는 “당신네 기업은 $10million(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소!”라고 말하며 450만 유로를 투자했다. 당시 IT 버블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이 간다.

IT 버블이 꺼지자 각국이 경제 위기를 겪으며 NaN도 위기를 맞았다. 투자자들은 NaN에 와서 9개월 내에 exit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당시 Ton은 회사 운영에 많은 돈을 쏟아 부은 상태였고 지분 또한 10%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 Blender를 다시 가져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6개월 후 NaN은 Blender의 첫번째 상업용 프로덕트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신흥 시장이었던 상호작용이 가능한 웹 기반 3D 미디어 시장을 목표로 했다(게임 엔진을 포함해 3D 그래픽을 웹에서 로드할 수 있는 웹 플러그인까지 개발한 상태였다). 그러나 저조한 매출 실적과 어려운 경제상황이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은 NaN의 경영을 모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에는 Blender 개발을 중단하는 것도 포함됐다.

Blender를 살리기 위한 노력

복잡한 소프트웨어 상의 아키텍처나 미완성 수준의 기능, 표준화되지 않은 GUI 등 Blender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으나 Blender에는 당시 열성적인 사용자 커뮤니티와 Blender 유료 버전의 구매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Blender가 계속 개발되길 원했고 Ton은 Blender가 관으로 보내지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큰 개발팀을 꾸려서 회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Ton은 비영리 단체인 2002년 3월 Blender 재단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Blender 개발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Blender 재단의 초기 목표는 커뮤니티 기반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로서 Blender의 개발과 홍보를 이어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Blender의 개발에 대한 권리는 NaN의 투자자들에게 있었다. 2002년 6월, Ton은 Blender를 오픈소스로 릴리즈하기 위해 NaN 투자자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source: blendernation.com and https://inspirationtuts.com/why-is-blender-free/

Blender에 대한 소스코드와 지적재산권을 투자자들로부터 매입하기 위해 “Free Blender(무료 블렌더)” 캠페인은 10만 유로(21년 5월 14일, 현재 환율로 1억 3천만 원)를 모금하고자 했다. 블렌더 커뮤니티와 NaN 전 직원들을 통해 ‘Free Blender’라는 모금 캠페인이 실행되었다. 내 제품 내가 살리겠다는 사용자와 전 직원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크라우드 펀딩같은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앞서나간 건지..)

모두가 놀랍게도 캠페인은 시작한 지 7주만에 10만 유로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2002년 10월 일요일 Blender는 GNU GPL(General Public License, 자유소프트웨어재단 FSF에서 만든 오픈소스 라이센스. 소스코드 변경은 가능하지만 변경 시 원본이든 복제코드든 무조건 배포해야 한다. ‘공개’ 자체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오픈소스 라이센스이다) 라이센스를 들고 세상에 출시된다.

Blender가 무료로 배포되자 Blender와 관련된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Blender 개발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오픈소스로 살아난 Blender는 Ton Roosendaal의 주도 하에 Blender 팀과 커뮤니티, 컨트리뷰터의 노력으로 처음 출시된 지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연혁은 Blender Document에서 확인할 수 있다.

Blender Studio 작품 — Spring

Blender와 오픈소스 문화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Blender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릴리즈되면서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Ton은 자신의 트위터에 Blender는 앞으로도 영원히 모든 사람에게 공개될 것이라고 남겼다. 일부는 Ton의 오픈소스 선언에도 불구하고 Blender가 계속 살아남을까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물론 기업 소프트웨어에 비해 오픈소스는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어렵고 메인테이너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으로 인해 유지되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불확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래 깃허브 인사이트에서 볼 수 있듯이 블렌더는 현재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또한 무료 3D 모델링 툴을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태껏 Blender를 개발해왔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Blender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Blender와 오픈소스 정신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오픈소스 문화의 수혜자만 되기보다는 기여자로서도 참여하고 싶다.

blender 프로젝트 insights

Blender 깃허브 프로젝트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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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Roseline Song

Front-end Web Developer working for a start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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